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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대응의 새로운 지평: 데이터 플랫폼 기반 정밀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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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전 세계는 신종 감염병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생생하게 목격했고, 감염병 대응 역량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감염병 대응은 이제 사후 집계와 격리 위주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실시간 임상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 방역과 신속한 치료제·백신 개발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하여 국립보건연구원은 파편화된 의료 정보를 통합하고 분석할 수 있는 '감염병 임상연구 데이터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염병 임상연구 데이터 플랫폼은 임상연구 데이터를 축적하여 감염병 연구 인프라를 제공하고 감염병 위기시에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단순한 기록에 그쳤던 데이터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핵심 정보가 되기 위한 기반을 만들 것입니다.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의 감염병 감시체계는 실시간 임상 데이터 연계를 통해 감염병을 조기에 탐지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National Health Service는 다기관 데이터를 자동 수집하여 의료진의 입력 부담을 줄인 연구망을 운영 중이며, 미국의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역시 BioSense 플랫폼을 통해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분석하여 질병 유행을 조기 탐지하고 있습니다.
국내 연구 또한 개별 병원 단위의 데이터 축적을 넘어 다기관 연합 연구가 가능한 공통데이터모델(CDM) 기반의 플랫폼 구축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학교병원과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보라매병원이 구축한 ‘ONE SNUH Network’는 3개 기관의 통합 데이터를 한 번의 접근으로 분석할 수 있는 공동연구 플랫폼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필자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추진된 ‘감염병 임상연구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한 거버넌스 및 운영체제 구축’ 사업을 2025년 6월부터 수행하고 있으며, 이 사업을 통하여 데이터 거버넌스 및 관리 체계 수립, EMR 데이터를 활용한 CDM 구축 전략 검증, 그리고 플랫폼 구축을 위한 법적, 제도적 검토 및 개선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진의 수기 입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준-실시간’ 데이터 연계 방안을 모색하며, AI 및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활용해 비정형 임상 기록을 표준 용어로 자동 매핑하는 기술적 혁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故 이건희 회장 유족이 기탁한 기부금 7,000억 중 연구 지원에 배정된 1,000억 원은 임상 데이터 인프라 구축의 핵심 동력입니다. 이 자산이 국가적 대응 역량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노력이 필수입니다. 먼저, 기부금 사업은 중앙감염병병원과 지역 거점 병원을 잇는 '감염병 임상 데이터 고속도로' 구축에 집중해야 합니다. 질병관리청 국립감염병연구소는 공공기관 단독으로는 방대한 임상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기부금을 활용해 민간 병원이 참여하는 데이터 네트워크 허브를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시급한 과제는 원활한 데이터 통합 및 활용을 저해하는 법적 근거의 미비로 인한 한계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현행 '감염병예방법' 제40조의5는 데이터 연계 목적을 예방, 관리, 치료로 한정하고 있어, 연구 개발 목적의 신속한 데이터 연계에는 법적 제약이 따릅니다. 기부금 사업은 단순히 기술적 인프라를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구 목적의 가명정보 활용 근거를 법제화하고 개인정보 보호법과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등 '제도적 생태계'를 마련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어야 감염병 발생 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집니다.

감염병 임상연구 플랫폼 구축은 과거의 기록을 모으는 작업이 아니라 미래의 팬데믹에 대비하는 강력한 방어선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故 이건희 회장의 기부 정신이 깃든 인프라와 한국 보건의료분야 연구진의 탁월한 역량이 결합한다면, 대한민국은 데이터 기반의 정밀 방역 체계를 갖춘 세계적인 보건 안보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기술과 나눔의 시너지가 빚어낼 미래 플랫폼이 우리 국민의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소망합니다.